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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동행하는 사순절] 34th
 글쓴이 : 에베소
 
제목: 베드로의 부인
본문: 요18:15~18, 25~27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8: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18: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주님께서 결박 당하시고 심문 당하실 때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는 대제사장의 뜰에 와있었습니다. 이 '또 다른 제자'는 다른 부분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감추었던 요한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께서 잡히실 때 다 도망갔습니다. 마가는 홑이불을 두르고 주님을 따라가다 벗은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이들에 비한다면 결박된 주님을 버려둘 수 없어서 죽음의 세력이 있는 본거지까지 들어간 베드로의 모습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용기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두려워 숨어있는 것입니까? 왜 수제자는 어둠 속에 숨어서 불을 쬐며 온갖 수모와 고난을 당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제자의 모습이 아니라 남입니다. 베드로는 안나스 앞에 당당하게 증인으로 나섰어야 했습니다. 유다가 고발했다 할지라도 베드로의 증언으로 재판의 결과가 뒤집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옥에도 죽는 데도 가겠다던 결연한 각오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문 지키는 여종의 물음에 베드로는 무너졌습니다.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다', '나는 그를 모른다' 심지어 저주하며 맹세하여 '나는 그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마26:69-75). 주님을 대적하는 수백명의 무리 앞에 칼을 빼었던 용기는 사라지고 비겁하고 나약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잔인한 재판장에서 오히려 당당하고 떳떳하셨습니다.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반석'을 뜻하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결의와 용기를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변화된 베드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행4:1-13). 안나스의 문중 앞에 다시 선 베드로의 모습은 비겁하게 주를 부인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기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베드로의 용기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고 말씀하셨던 주님의 사랑과 믿음의 권면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치욕스러운 과거는 만세에 길이 남는 모든 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수장이었던 베드로가 이 기록을 지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는 자신이 쓴 복음서에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 안에 있었던 귀한 세계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주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의 길이었는지 증거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이 정직한 자기 고백으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의 빛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외면하고, 십자가 앞에 주를 부인했던 비겁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자까지도 품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 길을 열어주신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묵상합시다. 변화된 베드로와 같이 허물 많은 우리를 위해 보혈 흘리신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담대하게 증거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