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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범사에 감사하라
 글쓴이 : 에베소
 

본문: 살전5:16~18

제목: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본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9월 첫째주일입니다. 기도하신분의 기도처럼,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새벽에는 쌀쌀한 바람이 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다 그런지 모르겠는데, 문을 열고자면 새벽에는 추울 정도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정말 무더웠던 8월 중순이 불과 20일전이었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너무 더워서 시원한 바람 조금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때가 20일전이었는데 이제는 선선하고 어느덧 이미 가을이 왔다고 얘기가 들립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삶이, 신앙의 길이라는 게 우리의 환경 속에서만 보면 정말 어떤 것을 소망하기 힘든 여건 속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어느덧 가을의 때로 접어든 것처럼, 신앙의 길 가운데서도 그런 때를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을 소망해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나듯이 다 죽은 것 같고 아무것도 소망하기 힘들어 보이는 그런 겨울이지만 때가 되니까 싹이 피고, 정말 새로운 때를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때도 그런한 줄 믿습니다. 기쁠때가 있고 슬플때가 있고 웃을때가 있고 울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울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한날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 보겠습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항상 기뻐합니까? 항상 기뻐하십니까? 저도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있나? 그렇지 않구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쁜 일이 있어야 기뻐하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기쁜 일이 있고 슬픈일이 있고 좋은일이있고 나쁜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냐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도 이야기 했습니다.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는 잘 아시다시피 옥중서신입니다. 사도가 옥에 갇혀서 편지를 빌립보 교우들에게 쓴것입니다. 사도는 어떤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했을까 생각해봅시다. 나는 옥에 갇혀서 괴롭고 힘들지만, 그러나 너희는 기뻐하라는 것입니까? 나는 기쁘지 않지만 너희는 기뻐해라 이런 것입니까? 사도는 옥에 갇혀있습니다. 옥에 갇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절망적인 상황일 수 있습니다. 사도의 불타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에 갈 때 장렬하는 태양도 마다하지 않고 갔던 열정의 사람이 갇혔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도는 빌립보 교우들에게 얘기합니다. 갇힌자가 갇히지 않은자에게 기뻐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112절 보면

 

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당한일은 예루살렘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로마로 압송되지 않습니까? 모든 당한 일들이 괴롭고 답답하고 어려운 그런 일이라고 다 여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중단되고 멈춘 것이 아니라 복음이 오히려 진보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사도는 갇혀서도 절망가운데 좌절하고 신음하지 않고, 시위대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온 시위대와 황제의 친족까지도 그들에게까지도 복음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만나서 전하려면 불가능한데, 불가능한일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찾아보겠습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악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선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악한일 모든 나쁜일들을 경험하는 사도안에서,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와 손길들을 바라보니 하나님께서 더 좋은길로 선한길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너희는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믿는자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에게는 비록 우리들이 어려움에 고난에 어려움을 당하는 환경가운데 있다할지라도 선한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기뻐했습니다. 옥에 갇혀서도 이런 기쁨이 있었습니다. 절망 안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옥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들을 사도는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릴 때,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우리의 기쁨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우리의 기쁨은 근원적으로 구원에 대한 기쁨이고 감격입니다. 지난주에 잃어버린 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쁨이란 어떤것인가?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얻어진 생명, 이 생명으로 말미암은 영생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인데. 어느덧 이것이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생명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억만금을 준다 할지라도 생명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신앙의 길을 가다보면 기쁨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싸이고 절망과 좌절에 갇혀서 신음하는 모습이 내안에 발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회복해야하나? 주님주신 기쁨, 생명 그안에서 기쁨과 감격을 우리가 다시 회복하고 붙들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 주안에서 그리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주님 안에 있는 기쁨은 무엇인가? 주님의 기쁨은 무엇이냐? 요한복음 16장 통해서 봤습니다.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기쁨을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에서 떨어질 때,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주님 주신 은총은 정말 너무나 큰 기쁨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 기쁨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에 우리가 참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많이 여럿 키우는데, 아이들이 아파서 신음할 때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병원에 앉아서 너무 힘없이 끙끙앓을 때 힘듭니다. 부모마음이 눈물이 납니다. 아파하는 신음하는 자녀를 두고,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라는게 가슴 아픕니다. 그런 아픔 한두번쯤은 다 경험해봤을 것입니다. 어린아이 자라면서 아무런 문제없이 아무런 아픔없이 자라는 자녀들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두번이라도 정말 아파서 응급실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고통 속에서 눈물 지을때 부모의 마음이 정말 아픕니다.

 

백혈병이나 희귀병에 걸려서 신음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있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픈 것을 경험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그 아픔이 더 큰겁니다. 그 아픔을 내가 질 수 있다면, 내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모 안에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 아픔을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부모에게 있는데 죽어가는 불치병에 갇혀서 죽어가는 자녀를 사랑하는 아들을 두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부모의 고통을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눈물흘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우리가 이런 경험을 안해봤을지 모르지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플까? 그런데 그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자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서 살릴수만 있다면 생명이라도 아끼지 않고 던질 수 있는 것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주님 안에 십자가의 길 목전에서 고통이 있었지만 아픔이 있었지만 또한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기쁨이 너희안에 충만하기를 원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살린 그 기쁨이, 자녀를 살릴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예수님안에 있는 기쁨이라는 것이 우리를 살림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게한 것. 그것이 기쁜것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당신의 자녀들 하나님의 형상된 자녀들을 사지에서 건져낼 수 있는 생명살리는 기쁨을 당신께서 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기쁨을 보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길 바라셨으며, 기쁨을 누리길 바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라는 것은 우리를 살린 생명이었습니다. 무엇으로도 그 생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생명을 바꿀수 있겠습니까? 구원얻은 기쁨과 감격을 누리면서 살아가길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찬양이 있습니다. 이세상 무엇과도 나에게 생명주신 주님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기쁨이 사라진 것은 은혜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에게서 멀어진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이들을 신앙을 하면 믿기만하면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런 신앙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어려움이 오면 어찌 이런 일이 내게 있는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달랐습니다.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시련이 오면, 믿는 자들이 이상하게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나에게 이런 시련 주십니까? 왜 나에게 환란이 오는것입니까?’ 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상하게 생각할게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2절에 너희에게 시험이 오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시련을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불시험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려움 환란을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욥기에 나온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게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면서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이간질합니다.

 

기쁜 일이 생기면 누구라도 기뻐합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가? 사도는 그런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얻은 구원 때문에, 비록 우리 삶가운데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구원의 생명을 그것이 뺴앗아갈 수 없기 때문에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감격하고 기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확실한 은혜 안에 거할 때, 세상에 나가서도 주변환경에 영향받지 않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질 때,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동화되지 않습니다. 세상가운데 침노되고 싸임을 받아서 어려움에 싸이고 좌절 속에서 갇혀버리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잊어버릴 때 누려야할 기쁨은 온데 간데 없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절망하며 좌절하고 신음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신 것은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것이지 세상에 영향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쳐야 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선한영향을 끼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침노를 당할 때 슬픔가운데 갇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굽니까? 세상을 변화시켜야 될 자들입니다. 세상과 환경에 영향받을 우리가 아니라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변화시키고 세상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 그 은혜가운데 거하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간직하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을 때, 사도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어려움을 줘보십시오 당장 배신할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장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라고 참소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시련과 고난을 불시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불시험이다. 우리 믿음을 흔들어놓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흔들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시험 오는 것을 너희가 이상히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믿음을 흔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우리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라 확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전한 믿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으로 확증될수 있기에 환란이 와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이 와도 기뻐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흔들어도 믿음이 확증되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워지고 그것을 통해서 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영광의 한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 환란 역경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고생없이 영광만 부활만,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고, 부활이 없는 십자가라는건 무의미 한것입니다. 헛고생이고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당하는 고난은 절대 헛것이 아니고 헛수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영광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게 보여주신 십자가입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시험과 많은 고난과 역경과 수고는 영광이 보장되어있는 수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칫 헛수고가 될 수 있고 헛고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영광은 일시적이고 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고생은 영광이 반드시 뒤따라오는 십자가이고 고난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것이고, 사도는 즐거워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오히려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고난을 받는게 얼마나 싫습니까? 벗어나고 싶다. 정말 벗어나고 싶습니다. 누가 고난을 좋아합니까?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난을 벗는 것이 우리의 소망인지도 모릅니다. 애굽병사가 쫓아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벗어나야 되는데 하나님 건져주소서. 하나님 구원해주소서. 그런 갈망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가 역경을 당할 때 벗어나고 싶은 얼마나 강렬합니까? 그러나 그 상황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상황을 주신 것은 우리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결정됐을 그 자리에서 예수님 영광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것입니다. 믿으니까 시험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욥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었기떄문에 시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나에게 주시는 것은 허락하시는 것은 나를 믿으시는 것이구나.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겨나갈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구나. 그것이 바로 영광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 환경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수 없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신앙이 바로 그러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우리를 둘러싸는 상황적이고 환경적인 것에 의해서 기쁨으로부터 감격으로부터 멀어져서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 속에서 절망과 좌절하고 있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사도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쉬지않고 어떻게 기도합니까? 쉬지않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어떨 때 쉬지않고 기도합니까? 여러분 안에 정말 간절함이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 생각 밖에 없습니다. 바디매오가 그러합니다. 내가 뭘 하여주길 원하느냐? 언제든지 간절함이 있으면 툭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준비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뭘 원하느냐?’하면 생각해보겠다고 합니다. 간절함이 있으면 한이 된다고 합니다. 그 한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늘 그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그 간절함이 있을 때 쉬지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간절한 것이 있을 때, 쉬지않고 우리의 삶이 기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구원의 소식이 어디에서 올까?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입니다. 그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삽니다. 밥을 먹어도 어디에 가도 그 생각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갇힐 때, 내 생각 안에 내 감정 안에 갇힐 때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우리는 이걸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게 되면, 잘못된 감정에 사로잡혀서 잘못된 생각과 감정에 휘둘립니다. 하루종일 그 생각 하루종일 그 감정에 싸여있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을 털어버려야 합니다. 예전에 대구에서 사역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성도와 전도를 나가려고 문을 열고 나가는데 그 순간에 다른 성도가 들어와서. ‘같이 전도 나갈까요?’ 하니까 아니라고 자기는 있겠다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둘이 나가고 있는 중에 그 성도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뭐라고 하냐면 왜 내가 들어오니까 나가는가?” 이러는 겁니다. 아니, 원래 나가려고 한건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 원래 나가려고 했는데 니가 들어온거야라고 얘길 해줬다합니다. 근데 그 성도 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저들이 나를 미워하는구나, 나를 싫어하는구나. 왜 내가 들어오니까 나가냐?‘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전화했기 때문에. 혼자 그런 생각하면서 괴로움에 싸여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 전화를 해서 오해를 풀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그런 오해를 하고 혼자 갇혀있을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전혀 그런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이러실거야라면서 내 생각과 감정에 싸여서. ’저는 못됐고 못났어요, 저 싫죠? 주님의 사랑받지 못할 자입니다하면서 주님과 담을 쌓고 성도들과 담을 쌓고 그런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안에, 감정 안에 갇히면 이렇게 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벗어나서 주님의 생각 가지고 가야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 범사에 감사하라.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이거라는 것입니다.

 

어제 모임이 있었는데 기도회 때 감사하라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감사할 때 마귀가 덜덜덜 떤다는 것입니다. 욥기에서보면 마귀가 참소합니다. ‘하나님 쟤 안 믿어요. 믿는 것 같으시죠? 아니라고 한번 시험해보라고 합니다. 어려움을 줬습니다. 1장에 주의 이름만 찬송받기를 원하나이다고 하면서 믿음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사단아 너 봤지? 아무 이유없이 너는 그랬는데 얼마나 온전한 믿음을 가졌느냐! 못 된 사단아하고 책망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 그것만 해서 그래요 몸을 쳐보십시오 그러면 바로 손가락질하고 욕할겁니다하나님은 욥을 믿는 것입니다. 욥아 믿는다고 속삭였을지 모릅니다. “사단아 너가 해봐, 안 그러기만하면 넌 죽어그렇게 경박하게 써 있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아닐까 생각합니다. 욥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늘 땅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현장입니다. 몸에 뭐가 나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욥의 아내는 그렇습니다. ‘하나님 널 사랑하다면서 너 왜 그러니? 욕하고 죽어라하고 떠나갑니다. 그래그래! 마귀가 얼마나 욥의 아내를 응원하면서 욥의 아내를 통해서 욥까지 쓰러뜨리려고 했습니다. 마귀는 욥의 아내를 넘어뜨렸습니다. 욥의 아내를 통해서 다시 욥을 흔드는 것입니다. 믿음을 흔듭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들의 신실한 마음을 흔들어놓습니다. 욥은 미련한 여자중 하나같이 말하는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너 일로와, 마귀야 너 일로와 넌 죽었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인간 안에 있는 내기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마귀가 떤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온전케 하나님의 온전한 아들로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 순결한 100% 순결한 것으로 우리를 만들고자 허락하시는 것이고 의의 열매로 확증되는 자리가 시험의 자리인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시험이 와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어려움이 온다 고난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되고 대비하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려움을 대해야되는 것이고 어려움도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하나님을 붙잡을 때 어려움도 극복되고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때 일수록 하나님을 붙잡아야지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해서 오히려 절망과 좌절과 분노 속에서 하나님을 손가락질하고 불평하는 그런 모습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마귀가 춤을 추고 얼마나 환호하겠습니까? 어떠해야 되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더 크게 열어주실 하나님의 장 중안에 내가 있음을 감사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마귀가 두려워 떤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마귀가 감사할 때 떠는것이지. 우리는 마귀의 잘못된 생각과 오해에 갇혀서 불평하고 원통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환호성을 지르게 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어떠해야하나? 감사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불평할일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렇기에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있는 것으로 주신 것으로 감사했습니다. 타락한 사람의 현실은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공기가 좋을때는 공기가 좋은것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오염되고 북경에서 황사가 오고하면,공기 좋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물이 오염되고 물먹기 힘들어지니까 생수를 팔기시작하니까 좋은 물이 있을 때, 냇가에서 떠먹을 수 있을 때가 얼마나 감사했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옆에 주신 지체들. 옆에 있는 동역자들로 인해서 때로는 동역자 때문에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동역자 때문에 아파할 수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동역자 때문에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고 노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성화의 길을 우리가 가는것인데. 그의 부족함도 내가 채워주고자 하고 나의 부족함을 저가 채워주고. 여러분 부족함을 보면 너 왜 이거 부족하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가 해야되는데 제안에 회개가 됐습니다. 이미 주신 여러분들이 얼마나 귀한가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평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좋은지체들 완벽한 지체들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형제자매 지체들, 여러분들 안에 주는 모든 여건들 환경들안에서 불평과 원망의 요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정말 감사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귀한 것을 우리가 잃어버리고 놓치고 살았구나! 감사하면서 살아야 되는구나! 부족한 것을 내가 채워줘야 되는구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성화의 길을 갈 수 있고, 내가 감싸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우리 성도들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내안에 불평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생각을 바꾸니까 감사의 제목들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귀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그렇겠구나. 우리 정말 꼴꼴맞은 모습이 있지만, 정말 귀하고 내 마음에 그런 생각의 전환이 왔습니다. 정말 귀한 것이구나 감사하면서 가야겠구나. 내가 그를 위해서, 채워줘야 될게 무엇일까? 내가 사랑해줄 수 있는 성도들이 있음에 감사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딨습니까? 저도 부족합니다. 부족한 설교를 듣느라 힘드시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제 부족함을 채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찬양하는 사람은 더 은혜를 줘야겠다 내 부족함을 채워줘야겠다는 생각 해줬으면 좋겠고, 여러분들이 더 간절히 기도해서 은혜받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안에 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연약함이 있습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채워주고 감싸주면서 가는 것이 정말 주님께서 가신 길이었고, 바라시는 길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생각을 우리가 묵상하면서 주님주신 이 말씀을 따라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