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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글쓴이 : 에베소
 

본문: 10:29~31

제목: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성경본문]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본문 말씀은 너무도 귀한 말씀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했을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끝까지 지키시고 늘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사랑하시는 자를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심임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장면이다.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까지도. 그 작은 미물까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팔려가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셨는가?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우리 뜻대로 우리 생각대로 모든 것이 되어가는 것 같지만,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발걸음도 세시고, 그리고 머리털을 다 세시는 분이 계십니다. 누가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는 자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 수까지 아신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 도 다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예전에 전도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발걸음을 세실까? 왜 그럴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데,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집사 빌립이 지나가는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신 것이 시간까지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나와 만나게 하려면 발걸음 뿐 아니라 걷는 속도까지 생각해야지만이 딱 맞딱드리게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이렇든 모든 상황을 아시고 나의 모든 것까지 보시는 하나님이시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밀한 것까지 다 아시고, 우리 삶의 구석 구석까지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그런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이 어디서 문제가 되고 절망하게 되는가? 그것은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잃어 버릴 때입니다. 즉 하나님이 계심을 망각하게 될 때,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을 때 절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절대적인 확신이 주님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미미한 어떠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정말 세세한데, 너무 미세한 부분인데 거기까지 하나님의 영향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관찰하시고 주장하시는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하신다. 하물며 너희들에게 있어서랴? 하물며 너희에게는 더 신경을 쓰시지 않으시겠는가? 이 말씀을 믿는 자, 굳게 붙들고 사는 자에게는 불안이 사라집니다. 우리 모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위대한 신앙의 승리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위대한 역사 가운데 위대한 업적은 남긴 믿음의 승리자들 안에는 절대 예정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절대 예지 예정의 신봉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붙들었던 구절은,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정하셨고 또한 그들을 부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의 사정과 형편을 하나님께서 모르신다고 생각할 때 불안하고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서운해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여건과 형편을 아실 뿐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주변의 환경까지도 다 살피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고 항상 나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 다 아시고, 정하신 우리를 부르셨고 부르셨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 이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단백하게 받아 드릴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어떠할 때 마음이 흔들리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정말 다스리고 계시는가? 의심할 때입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무엇을 믿는다라는 말인가? 하나님이 반드시 계시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 이게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을 구하는 자,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반드시 계시다라는 것, 그리고 그 분에게 구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신앙인에게 이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하지만 정말 믿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의심을 품으면 불안이 들어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사실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믿음에 금이 가면 그 틈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들어오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의심과 불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상황가운데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가?’ 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절대적인 믿음 안에서 의구심을 타고 들어오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내어쫓길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는 불신을 두 마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말 될까? 안될까? 두 마음이 불신입니다. 믿음은 정한 마음 딱 한마음을 갖는 게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세계 속에서 원래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원래 우리가 믿음의 세계에 있어야 할 자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를 먹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자꾸 지식으로 판단하고 분석함으로 두 마음을 갖게 되었고 좌절과 낙망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심에 대한 믿음, 이 한가지에 대한 믿음만 갖고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믿음은 너무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참새 한마리보다 너희가 더 귀하지 않냐고 예수님이 말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다 아신다는 것과 정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에게 오는 것은 평안 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까지 다 세신바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개입하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게 하시구나 그것을 받아드리고 살아가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 이유를 모르는데 엄습해 들어 오는 공포가 있고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떠났을 때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을 때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데 어떻게 어둠이 엄습해올 수 있는가? 빛은 일방적으로 어둠을 몰아 내는 힘입니다. 결코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 없다. 빛가운데 거하는 자는 언제나 평안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길로 갈 때, 하나님과 분리 될 때 우리 가운데 어둠이 찾아 오게 됩니다. 타락이 라는게 자유를 찾아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과 허망한 길이였는가? 그들 마음에 더 큰 두려움과 경쟁과 더욱 피곤함만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신앙의 길을 가면서 힘든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이것을 더 원하실 텐데, 그런데, 그 진행이 더디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루를 살면서도 답답할 떄가 있고 지금껏 살아올 때도 답답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막막함과 불암함이 휘어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한가지만 믿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에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 눈물의 기도, 애절함과 간절함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단백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자 할 때입니다. 내 수준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보고자 할 때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자 할 때, 내 수준에서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게 문제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 생각과 너희 생각은 다르다고 하셨고, ‘내 길과 너희 길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55:8]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55:9]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런데, 내 생각 안에 갇힐 때 문제가 됩니다. 내 안에는 답이 없고 길이 없어 보일 때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내 안에 길이 없고 답이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는 만수가 있고 만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둑도 수가 낮은 사람은 끝난 것 같을지라도 고수에게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차원에서 제단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구석 구석 내 삶을 개입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평안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을 알 때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행동 뿐 아니라 나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꿰뚤어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함부로 살 수 없고, 함부로 생각할 수 없고, 함부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감출 수 있는 것이 없이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함부로 죄 짖지 않습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믿는 자에게 어렵고 답답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고린도후서 1장을 첫째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풍파가 지나가고 나면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핍박 뒤에는 더 큰 은혜와 위로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큰 핍박과 답답한 일을 당했을 때 그 뒤에는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핍박은 더 큰 하나님의 위로를 얻기 위함이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삶의 어려움은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결국 믿음과 사랑으로만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역사를 만들자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위로만을 받으며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역사의 큰 일을 할 재목은 신앙의 길이 남다르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러한 것처럼더 큰 핍박과 환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만큼 큰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탄의 방해가 있지만 그것을 견디고 견뎌서 우리가 정금과 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어려움이 없다면 없는 대로 감사하고, 많으면 또 많은 대로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은 감사를 갖고 살 때 행복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감사하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위대한 신앙의 승리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적으로 통치하신다는 이 한가지를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 대표자가 바울 사도입니다. 어떠한 고난도, 어떠한 환란도 이 바울을 꺽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절대적인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되고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신앙의 길 가운데서 이해할 수 없는 이들로 혼란스러운 것은 미시적으로 볼 때 혼란스러운 것일 뿐입니다. 바람을 보면, 아무렇게나 먼지들이 아무렇게 휘날리는 것 같지만, 지구적으로 보면 거대한 흐름이 있습니다. 파도를 볼 때도 아무 규칙 없이 요동치는 것 같지만 거시적 시각으로 봤을 때는 변함이 없는 원칙을 따라 해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 만을 보면서 우리는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정교하고 요묘하게 이 역사를 이끄시고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갇힐 때, 나의 시각과 환경 안에 갇힐 떄 혼란스러워하는 것일 뿐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볼 때는 후퇴 같고 말도 안 되는 모습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계획을 모든 일들을 진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너무 신비하고 오묘해서 우리 지식으론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지금은 내려 가는 것 같아 보이고 후퇴하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믿음의 사람은 내려갈 때 하나님이 더 높이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구나그리고 움츠리고 있다면 더 높이 뛰라고 하시는 것이구나.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면 사탄이 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비참의 세계를 맛보고 있다면, 비참하다고 생각한다면 더 크게 비상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뜻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나가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이유가 있음을 기억하길 바라고 믿음을 갖고 간다면 사탄이 잡을 수 없습니다. 한걸음 물러서는 것은 두 걸음 세 걸음 앞서가기 위한 것이라는 것.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빛 가운데 거함으로 사탄이 함께 할 수 없는. 어둠과 절망의 영이 결코 사로 잡을 수 없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