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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
 글쓴이 : 에베소
 

본문: 11:13~16

제목: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1: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1: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안녕하세요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풍성한 명절 연휴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다들 고향을 찾아 육신의 부모를 찾아 명절 대이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절이 되면 다들 예루살렘에 모이는 전통이 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무엇을 했나? 그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을 생각하였으며, 역사가운데 친히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념하였습니다. 육신의 뿌리보다는 영적인 뿌리를 생각하면서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육신의 뿌리를 생각하지만, 더 근원적인 나를 나 되게 하신 영적인 뿌리를 기억하며, 더 나은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장은 믿음의 장입니다. 믿음의 길이란 어떤 것일까? 본문에 근거해서 보자면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말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믿음의 길이란 어찌보면 이렇게 위험을 무릎쓰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안전하고 안락한 삶이 터전을 떠나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광야로 가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갈 수 없는 길,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갈 수 밖에 없는 길이 바로 믿음의 선진들이 갔던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하나님의 부르심의 약속만을 붙잡고 떠났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의 나그네의 여정은 이삭과 야곱을 거쳐 요셉까지 이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나그네 길이 130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조들에 비하면 짧지만 험악한 세월들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길이란, 어찌보면 이렇게 만사형통의 길이라기보다는 험악한 나그네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길이라 믿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희랍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 뜻은 밖으로 불러낸다는 뜻으로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는 것으로 구원으로의 부르심을 의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의 자리로 부르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떠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나그네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믿음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나그네라 칭합니다.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신앙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나그네라 칭하며, 그들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얻기 위해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들은 이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부르신 것은 이 세상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세상에 동화되어 사는 자가 아닌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시민권을 가진 신앙인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외국인으로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이중국적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도 우리가 신분증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 왕국의 시민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세상에 속한 이들처럼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육신의 소욕과 안락함을 추구하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깐 있다 가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신의 파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다시 부르시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인생이 길면 100년인데, 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0년후를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듯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애기합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잠깐 피어다 지는 꽃이요, 시들어 가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창조주 너희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라고 전도서12장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짧은 인생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이들은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헛된 인생, 남아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명절 때 죽음을 얘기하는 설교자는 아마 저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몰상식한 설교자를 여러분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을 바로 인식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그런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잠깐 살다가는 인생, 무엇을 하고 갈 것인가? 이것을 우리는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노정이라는 것은 이렇게 나그네 정체성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는 것은 방랑자와는 다릅니다. 나그네는 사모하는 곳, 지향하는 곳이 있는 것이고 방랑자는 그냥 지향하는 곳이 없이 그저 떠도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서 가는 나그네입니까? 구원받은 자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을 통하여 해방을 얻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출애굽을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구원함을 얻은 신앙인의 자리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을 출애굽하여 종에서 해방시킨 자리에 있는 것이며, 아직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에 이르지 못한 광야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신앙노정이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신앙노정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향점인 가나안에 대한 소망이 끊어지면,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방황하는 방랑자가 아니라 가나안을 지향하는 나그네 인 것입니다. 이것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으로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광야와 같이 각종 시험과 유혹이 난무하는 타락한 세상입니다. 혹자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시험의 연속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이 광야노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갈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도 또한 그 위험을 아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성막 가운데 계시면서 늘 그들과 함께 다니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 삶가운데도 함께 하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돌면서 까마귀 밥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노예근성은 다시금 애굽의 고깃국을 그리워하게 했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을 지향했던 못난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당치 않았습니다. 죄악의 세상으로부터 건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노정가운데 어려움이 있기에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고 가는 모습 되길 바랍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간 나그네 삶이라는 것이 야곱의 말처럼 험악한 것이었고, 고난의 삶인 것입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평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고난한 삶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이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깊이 만나기 원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고난이 있다면,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경험했던 욥은 고난을 경험하고 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난의 과정을 지나는 분들은 이런 욥과 같은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에게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은 과정을 뿐입니다.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 소망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천국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천국 소망을 바라면서 가는 것인데, 세상가운데 살아가면서 더욱 천국소망이 간절해 지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천국을 보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하는 말이 빨리 천국에 가고 싶은데 순교할 곳이 없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천국소망이 있는 자는 세상에 미련이 없습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빨리 가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고 싶다고 빌립보서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이런 믿음과 소망 안에서 고난한 나그네 길이라 할 지라도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길을 갔던 선조들을 보시면서,


11:16]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아니 하나님 믿음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하나님임을 기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서 동일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이 선진들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라 칭함 받기를 자랑스러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