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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내 양을 먹이라
 글쓴이 : 에베소
 

내 양을 먹이라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5:16 또 두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5:17  세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오늘의 본문은 요21장인데, 2031절을 보면 요한복음은 20장으로 마쳐졌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 21장은 이후에 덧붙여진 것인데, 신명기 42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떨림을 가지고 덧붙였던 요한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매우 중요한 것일 것입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일까.

구원받은 이들이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들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에서 건짐받은 이들이 다시 세상에 섞여서 살아갈 것인가. 구원받은 이들의 삶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구원받은 자가 가야할 길에 대하여 21장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예수님의 분부는 우리는 이것을 대사명, 그레이트 커미션이라고 하는데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의 결론과 같은 이제 구원받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주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 선교입니다. 정말 치열한 싸움가운데 우리가 있구나. 세상권세 잡은 자, 바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라나는걸 어떻게든 막으려하니까. 살고 죽는 심각한 싸움이 전세계에 가득하고, 21세기에 가장 핍박받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중국은 만명이 함게 예배드리던 성전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되어 사라지고, 모이지 못하게 다 흩어버리고 겁을 주고,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핍박받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러한 핍박가운데 더 늘어나고 더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1:1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죠. 누가 대신 해줄수 없는 인격적이고 총체적인 하나님과의 만남, 그로인해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거듭태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하자. 이렇게 1:1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이제 어떻게 가정을 이루고 가정안에서는 어떠한 하나님의 법과 윤리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부모세대 한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들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2세들을 어떻게 기독교적 가르침안에서 잘 길러낼 것이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그동안의 기독교가 간과했습니다. 개인의 구원에만 초점을 맞췄고 영접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등한시 함으로 오늘날의 기독교는 방향성을 잃었고, 세속화되어가며 가정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자녀의 3명중 1명은 세상으로 흘러가고, 구원받은 이들은 천국가는 것만 생각하는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힘을 잃은 기독교, 주님의 말씀과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거대한 싸움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간궤중 하나가 동성애이고,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이땅가운데 이루어나가고자 하는 치열한 싸움입니다. 학교가 이러한 주님의 일꾼을 리더를 길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성경적인 가치관과 말씀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다양한 자신의 달란트와 카리스마를 가지고 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어 내는 그러한 주의 일꾼으로 바로 서야합니다. 그들이 사역할 사역지가 있어야 하고, 사역지는 더욱 전문화되어 세상의 거짓된 문화들과 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철저히 성경의 말씀대로 만들어가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바라보는 소망을 잃어버린 교회가 아니라, 이땅에서 천국을 만들어가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요한복음에 1장이 더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21장의 내용을 보면 고기잡는 이야기가 나오고 15절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할수 있을까요.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네 주님 그렇습니다. 이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께서 아신다고. 우리가 먼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교회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습니다.  이 사랑이 무엇인가. 주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 내가 죄인되었을때에 내가 주님의 원수되었을때에, 내가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다할지라도 그런 나인줄을 미리 아셨음에도, 끝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의 그 사랑. 이 사랑을 깨닫고 베드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왔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구원케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실 때 우리는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 무엇이 사랑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든 삶, 주님이 나를 대하신 그 마음.. 이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자. 이 사랑을 안자들은 이제 사랑의 개념이 바뀝니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제 내가. 우리가 어떻게 주를 사랑합니까.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나 자신을 사랑합니까.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처럼, 우리가 어떻게 형제들을 사랑합니까.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베드로의 이 대답은 최고의 사랑의 대답입니다. 내가 죽도록 사랑해요, 미치도록 사랑해요…. 베드로가 눈떴던 그 놀라운 사랑.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처럼,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온전히 알기 원합니다.

이 사랑의 고백이 있는 자에게 주님께서 이제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우리가 주님의 양을 먹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사랑에 눈뜬 자들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큰 사랑의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랑이 그의 영혼을 채울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크고 완전한 사랑은 없습니다. 구원받은 이는 이제 그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원을 통해 한없는 영적인 자유함을 얻은 자가 그 자유를 스스로 내려놓고 스스로 사랑의 종이되는 삶. 주님께서 우릴 위해 그러하셨듯이 그 사랑의 삶을 닮아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주님의 사랑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전하고, 주님의 양을 치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선교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두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선교와 선교를 돕는 것. 직업의 귀천이 없듯, 사역의 귀천이 없고 하나의 꿈을 꾸고 하나의 심장을 가지고 열심히 목양하고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그리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받는 우리 에베소교회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