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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일어나라 함께가자
 글쓴이 : 에베소
 

일어나라 함께가자

26:36~4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신대륙으로 배를 타고 건너온 이들이 새땅에서 얻은 첫수확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올려드렸던 감동적인 예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들의 수확물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감사는 실로 감동적인 예배였을 것입니다. 죽지않고 살았음에 감사하는 예배였을 것이고,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밝은 미래에 대한 감사의 예배였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오늘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의 예배를 드리길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겟세마네의 주님의 기도를 묵상하며 생명주신 주님에 대한 감사가 있는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는 결단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이제 죽음은 확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리러 겟세마네로 가십니다.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지금 세명의 세자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다 표현하십니다.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으니..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누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곳으로 만큼 떨어지셔서 주님은 따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피와 땀을 쏟을정도의 매우 진지하고 간절한 기도였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의 자리에 지금 3명의 제자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3명의 제자를 데리고 가셨을까요.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이야기하시고 시험에 들지않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들이 기도해야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 제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최후의 만찬의 자리가 있었고 주님께서 죽음을 아버지께 돌아갈 것임을 깊이 얘기해주셨고 십자가는 영광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라 갈것인가. 따라가지 않을 것인가.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시험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사랑하고 아꼈던 제자 유다의 배반이 있었습니다. 그의 배반의 단초는 주님의 아낌없는 사랑, 비움의 삶을 허비로 보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동은 되었을지 모르나, 죽음을 이야기하시는 주님앞에 죽음은 죽음일뿐, 비움은 비움일뿐, 자기 민족에 해방을 가져다줄 혁명적인 힘은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는 무너졌습니다. 죽음을 이야기하시는 주님이 한없이 약하고 어리석게 보였을지 모릅니다. 제자의 배반앞에 지금 주님은 세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모두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주를 따라가겠나이다라는 이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제자들은 이 면에서 진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잠들었습니다.

주님은 돌던질만큼 떨어지셔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와 제자들의 기도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셔야할 세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겟세마네에서 부딪혔던 하나님앞에 피땀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갈 때 결정적인 적대세력에 부딪혔습니다. 죽음의 세력이 죽음의 힘이 주님을 삼키려고 합니다. 제자들은 시험을 당하지 않게, 주님을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이 기도를 진지하게 했어야 한다면, 주님은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고 멀리 떨어져서 다른 기도를 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길을 갈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의 시험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험은 이미 넘어서 계십니다. 그럼 주께서 받으셨던 그 고통의 기도는 무엇일까. 마태와 누가는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시험이 아니고 공포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지 3, 33세의 꽃다운 나이의 주님앞에 지금 죽음이 와있습니다. 죽음의 세력이 주님을 덮고 있습니다. 이 죽음의 세력앞에 심히 울며 통곡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죽음의 힘, 이것보다 더 강한 힘이 있을까요? 죽음이 주는 공포, 죽음의 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존재가 비존재가 되는 세상의 아무리 강한 왕이라도 죽음에 갇히고 죽음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죽음의 세력앞에 주님이 죽음의 세력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기셨는가. 사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피눈물의 통곡의 기도후 주님에게 더 이상 고민과 통곡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통곡의 눈물을 사랑합니다. 개선장군처럼 항상 힘에 넘치는 십자가또한 주님이시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겟세마네의 이 눈물의 기도는 죽음앞에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죽음의 힘, 그 공포앞에 피눈물의 기도를 드리셨던..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이 선택할수 있는 많은 길이 있었습니다. 피할수 있었고, 맞서 싸울수 있었습니다. 억울한 죽음이고 자기 백성이 자기를 죽이려합니다. 그러나 자진해서 스스로 죽음의 길로 십자가의 길로 나갈수 있었던 피하지 않으시고 대결하지 않으시고 죽음의 길을 갈수 있었던 죽음의 힘앞에 심히 고통하셨으나 죽음을 이길수 있는 능력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정말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많은 병사들앞에서 홀로 칼을 빼들고 주님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끌려가시고 심문받으시는 주님곁을 떠나지 않고 대제사장의 뜰까지 들어갔습니다. 다 도망갔지만 주님을 홀로 둘수 없었던 수제자 안에 있었던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여종과의 대화에서 첫번째 아니다 두번째 나는 모른다. 마지막에 주를 저주하기까지.. 주님을 그토록 사랑하던 베드로가 왜 비겁해진 것입니까. 여러분 이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신앙이 출발합니다. 사랑으로 주님의 삶을 따르고 비우고, 헌신하고 살다보면 우리의 신앙이 반드시 적대세력에 부딪힙니다. 외적인 세력일수 있고, 내면의 세력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력의 마지막, 가장 강력한 세력은 죽음입니다. 죽음, 죽음이 주는 공포, 죽음이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 것 같은.. 내가 없어지는 듯한 공포, 내 인생이 사라질듯한 공포. 이렇게 살다가는 내 인생이 없어질 것 같은 공포. 내가 꿈꿨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 같은 공포, 두려움.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이런 상황을 주실수 있으실까. 그러한 순간. 그러한 어려움. 한마디로 죽음입니다.

베드로와 주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그 죽음을 칼로 맞서려했습니다. 죽음을 힘으로 이땅의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인간적인 용기로 인간적 결단으로 이길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베드로는 슬피 울게 되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하는 자는 죽으리라. 베드로안에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살고하자는 마음이 나를 살리지 못하고 죽입니다. 죽고자 할 때 하나님이 살리십니다. 주님은 그 공포를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 모든 것이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삶을 맡기는 믿음. 죽음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삼키셨던,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믿음. 십자가는 영광이라는 믿음. 그 믿음의 삶을 우리가 순종이라고 하자.

 

11장에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가 죽게되어서 주님께 오시기를 간구했으나 주님께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가십니다. 그사이 나사로는 죽게됩니다. 마리아안에 깊은 슬픔이 있고, 원망섞인 슬픔인지 모릅니다. 그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던 마리아안에 슬픔의 눈물을 보시면서 주님께서 원통해하시며 우십니다. 사랑이 있으나 믿음이 없는자를 향한 원통의 눈물입니다.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게 맏느냐

죽음을 죽음으로 바라볼 때, 슬픔이 오고 죽음안에 갇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죽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생명만이 있습니다. 죽음의 고통, 죽음의 공포를 이길수 있는 힘은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이러한 믿음안에 어떠한 죽음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주님을 사랑한다 할수 있고 우리가 얼마든지 사랑하므로 신앙의 길을 간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흔들리고 상대적이되고 무너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 믿음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그분안에 달려 있으며, 죽음의 모든것까지도, 죽음을 넘어선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

 

예수님께서 세번의 기도를 드립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간절한 주님의 소망이시고, 눈물의 호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러나의 기도, 이 짧은 반전의 접속사에 깊은 주님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담겨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잔이라면 내가 받겠나이다. 십자가는 영광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몰려오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을 굳건히 세우시는 주님의 이 믿음. 이 믿음이 죽음을 이깁니다. 이 믿음위에 설 때 죽음에 갇히지 않는 무덤에 갇히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은 이 믿음안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세상의 가장 강한 힘 죽음을 이기셨던 주님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의 그 희생의 길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음을, 우리를 살리기 위한 희생이었음을. 주님께서 세번의 기도를 드리시고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일어나라 함께가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안에서 나의 모든 근심과 걱정과 고통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안에서 나의 모든 해답을 얻는 그러한 기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받겠나이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이 죽음은 모든이들이 죽음을 이기는 길이 될것임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고, 다시산 생명은 찬란한 부활의 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일 것임을 믿기에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세우고 더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후 주님은 온갖 모욕과 사형수라는 억울한 굴레를 뒤집으시고, 거짓선지자라는 손가락질 속에 처참한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 어떠한 모욕과 죽임도 이미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이기셨기에 모욕이 모욕으로 수치가 수치로 다가오지 않으십니다.

 

기도후 주님께서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일어나라 함께가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이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추수감사절, 우리가 하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릴 것인가. 십자가에 담겨진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것을 온전히 알아 주님께 깊은 감사를 올려드리는 에베소교회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