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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글쓴이 : 에베소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겆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잔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우리가 오늘 죄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어가보고자 합니다. 아 오늘 심각한 설교가 되겠구나, 죄는 그만 얘기해주세요. 여러분들이 목사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을 할수 있으면 오늘 설교는 아주 일찍 끝날수 있습니다. 죄가 뭐죠? 무엇을 죄라고 하는거죠? 여러분 명쾌하게 대답할수 있습니까? 죄는 어디서부터 왔죠? 죄라는 기준이 시대마다 다르고 오늘의 죄가 먼훗날 죄가 아닐수도 있는 세상인데. 그럼 천국이 영원히 사는 곳이라고 한다면 예전에 죽은 사람과 미래에 죽은 사람의 죄의 기준이 다르면 의의 기준도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천국에 혼란이 있게 되지 않겠어요?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으로 다스리셨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라고 했을 때 시대마다 죄의 기준과 의의 기준이 다르다면 그럼 하나님이 변하신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대전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동일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동일한 성품과 동일한 진리로 역사를 이끌어가신다는 것. 이것이 창조신앙의 핵심이고 우리신앙의 대전제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의 마음은 요동치고 변하나, 하나님은 어제고 오늘이고 동일하셔서 우리에게 빛이 되시고 길이 되시고 기준이 되신다는 믿음, 영원한 유일한 기준. 그분이 하나님이시잖아요.

창조를 잠깐 언급하면, 어떤 물건이 있어요. 모든 물건에는 만든 회사든 사람이있죠. 물건뒤나 안에 적혀있습니다. 아 이 회사가 만들었구나. 믿을만하군, 이회사는 좀 불안한데.. 이게 브랜드죠. 세상과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셨죠? 믿을만한 브랜드입니까? 우리안의 창조신앙을 점검해 보자는거에요. 확실하죠. 이보다 더 완벽한 브랜드가 없죠. Made by God. 에프터서비스도 확실해. 만드셨을뿐 아니라 책임지시고, 삶의 모든 순간 도우시고 이끌어가신다. 이게 믿음의 삶이죠. 이게 신앙입니다. 잘 만들었는데 AS가 안좋은 회사면 고민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인생은 완벽한 작품, 작품이야. 만든이가 대단하신분이기 때문에 작품이 명작이 나온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온 삶을 도우시고 이끌어가십니다. 어디로? 영화로운 세계로, 영화로운 나로. 이게 성도의 견인이죠. 이 믿음안에 그 어떤 어려움과 시련도 인내할수 있는 힘이 생기고 절망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 그런데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럼 죄는 뭐냐. 이렇게 완벽한 브랜드, 완벽한 창조, 완벽한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과 같은 우리, 그리고 이 세상에 죄라는게 왜 생긴건가. 창조의 실수인가. 여러분 창조신앙의 핵심은 완벽하신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가신다는 믿음안에 우리의 영혼이 참된 안식과 평안안에 거하며 가는거잖아요. 실수하실수 있는 하나님? 이렇게 되면 그 어떤 기준도 있을수 없고 모든 것은 상대화되고 절대가 사라지는, 코스모스가 아닌 카오스가 됩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대전제,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 믿음안에서 그럼 답을 찾아보자. 하나님이 죄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온것인가.

죄가 뭐냐. 우선 죄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봅시다. 한자로 보면 그물 망, 찢을 비. 그물을 찢는 것이 죄입니다. 그물은 질서정연하죠. 가로세로. 요한복음1장에 요한사도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다고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면서 말씀으로, 곧 진리입니다. 불변하는 진리, 진리는 곧 법이고 질서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 이를 하나님의 불가변성이라고 하는데. 변하지 않으시는 분의 그 성품, 그분의 철학, 그분의 이면적 세계. 이것이 가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리고 우리입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내면적 세계가 외적으로 표현되어진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작품안에 그 작가의 정신이 다 표현되듯.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 이 세상을 가만히보니 이 모든 세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질서라는 것입니다. 질서. 창조 본연의 질서, 이 질서대로 살아갈 때 나무는 잎사귀를 내고, 꽃을 피우는 것이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게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이 질서가 깨지면, 나무는 시들고 꽃은 향기를 잃게됩니다. 질서가 깨진 것, 이것을 라고 하자.

아 무언가 질서에서 어긋났구나. 건강한 몸상태에서 이상이 생긴걸 병이라고 하듯이, 나를 만드신 이가 이미 놓으신 질서가 있었는데 이 질서가 깨졌구나. 그럼 구원은 뭐죠. 이 질서로 돌아오는거죠. 시든 꽃에게 햇빛을 쬐어주듯이.
그럼 여기서 질문이 한가지 생깁니다. 목사님 질문 너무 많이 하지마세요. 설교가 길어지잖아요. 진리에 대한 탐구가 다른 어떤 즐거움보다도 재미있습니다. 시간가는줄 몰라요. , 어떤 질문이냐면 완벽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질서가 왜 깨지게 되었느냐. 이 질서가 깨질수 있는 질서였던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왜 깨졌으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완벽하지 않으실수 있는 거군요? 하나님안에도 실수가 있으실수 있는거군요? 라고 생각이 발전하면 어떻게 되냐. 끔찍해지는거죠. 자 그럼 이 질문의 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완벽성, 전지전능성을 강조하고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아 그래, 하나님이 죄도 계획하셨고 질서가 깨질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큰 질서, 큰 그림이었던거야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은 유지되지만, 그 하나님 싫다고. 더 끔찍해지잖아요. 죄로 인한 고통을 보십시오. 심지어 생명의 원초적인 본능, 생명을 스스로 끊기까지 하는 이 고통. 이 고통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아 정말 끔찍해지는 거잖아요. 그런 하나님 싫다고,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사는게 낫겠다는 반신론이 나오는 거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을 진리를 잘 증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이것이 생명이고, 이를 증거하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인가.
이 질서가 도대체 왜 깨지게 되었느냐. 그 출발이 어디이냐. 인간이 최초로 죄를 짓는 장면을 한번 봅시다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이 나옵니다. 하와가 어떻게 죄를 짓게 되었는가. 뱀의 유혹이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 이 질서가 깨진 것은 유혹자가 있었구나. 하나님이 깨지게 하신 것이 아니구나. 예수님도 같은 증거를 하십니다. 천국에 대한 비유에서.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13: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주인은 분명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원수가 등장합니다. 그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질서를 놓으시고 이 질서대로 살아가면 모두가 좋은 열매를 맺게끔 만드셨고 그 창조는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유혹자, 원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가 유혹하고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러므로 질서가 깨어지고, 질서가 깨어지니 못먹는 떫은 열매가 되어버렸습니다
5:2 땅을 파고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예수님은 목가적인 비유로 하나님을 농부로 자주 비유하셨는데, 이사야의 예언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들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타락은 죄는 질서가 깨진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수입니다.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럼 이 원수는 어디서부터 온것인가. 조금씩 우리가 실체를 파악해 들어갑니다. 우리가 원수의 정체를 알면, 사로잡을수 있습니다. 모르면 잡힙니다. 알면 잡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사단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의 자리에 굳건히 서시길 바랍니다.
자 원수는 어디서 왔을까요. 뭐 많은 논쟁이 있었잖아요. 이원론, 선의 절대자가 있고 악의 절대자가 있다는 주장도 있고. 우리가 모든 해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진리의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은 어디서 왔다고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앞서 얘기했듯이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했고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를 따라 생명이 잉태되게끔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 원수가 나타났습니다. 이를 변질이라고 합니다. 의도했던 것과 다른 상태와 성질이 변한 것입니다. 원래는 사랑받는 피조물이었으나 변질되어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있죠. 하나님의 피조물이 사랑하는 아들이 될수도 있고, 원수가 될수도 있구나.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환경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고 보고 경험하고 듣고 하는 모든 것을 잘 구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3번 이사했다고 했습니다. 맹모삼천지교. 이는 환경의 중요성을 알았던 거죠.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님께 속한 자가 있고, 마귀에게서 난자도 있다는 겁니다. 동일한 유대인이었고 표면적으로는 같은 사람인데 다르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누구의 말을 듣느냐는 거라는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자식이고, 듣지 않으면 원수의 자식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원수는 진리가 그 속에 없고 거짓말쟁이라는 겁니다. 진리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 진리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거짓말을 계속 들으면 거짓의 사람이 된다. 거짓말을 계속 들으면 변질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왜 이런 거짓말쟁이, 변질된 존재가 되었을까요. 이러한 위험은 우리에게도 열려있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그가 왜 변질된 것인지, 변질의 실체가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화려한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의 질서에 왜 변질될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변질되는 것을 막으실수 없었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는 합목적적으로 한가지의 목적을 향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이상입니다. 온전한 사랑의 대상, 그와 함께 만들어가는 영원한 사랑의 기쁨의 세계. 여러분 천국은 사랑으로 영원히 행복한 곳이라고 하죠. 여러분에게 천국이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살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잖아요. 하나님 사랑하는데 사람들은 싫어요, 반대로 교회사람들은 좋은데 하나님은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아요, 복주신다고 하니까 하나님믿어요. 하나님과 사람들과 불완전한 관계, 조건적인 관계, 조그만한 어려움에도 내팽개쳐질수 있는 관계. 그러한 신앙. 천국에 가면 홀연히 내가 천국에 살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의 소중함은 여기서 오는거에요. 하나님의 질서안에서 우리가 자라나는 소중한 인생.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천국백성의 삶에 관하여 가르쳐 주시면서 그 가르침의 핵심은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미 온전해진 존재로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온전성을 향해 나아가야할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무엇의 온전함인가. 변질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이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가운데서 들포도가 된 것, 먹지 못할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럼 온전함은 무엇입니까.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의 삶속에 온전함이 있습니다.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수 없는 중에 믿으셨던 믿음, 그 믿음을 따라 흘렀던 깊은 사랑. 원수는 이 세계를 모르죠. 바랄수 없으면 바랄수 없는 것이고 믿을 수 없으면 안믿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오면 자기 살길 찾아가고 오해하고 미워한다고요. 몇일전 어떤 형제와 대화를 나누는데,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움이 있는거죠.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섭섭함이 들어온다고. 섭섭함이 오니 마음이 강팍해지고 답답해지고 화가 많아졌다고.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여러분 하나님은 마술사가 아니세요. 마법사가 아니라고요. 여기 뿅, 저기 뿅 아니라고요. 하나님의 모든 이적은 믿음과 사랑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게 창조의 질서에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 내가 이해할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사랑의 확신이 무너지지 않는 믿음, 그 믿음이 이적을 이루어냅니다. 이 믿음이 죽음을 이깁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도망가고 주저앉지만, 정말 믿는 사람은 전략을 세웁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역사하길 길을 뚫고 만들어놓습니다.
이러한 믿음, 사랑의 마음을 강제로 심어 넣어줄수 없잖아요. 조금의 강제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것은 훼손된 믿음과 사랑이 되는 거니까. 우리의 신앙이 자라다 보면 어느순간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내버려두실 때가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때를 사랑하죠. 오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 오 그럼 이제 더 정신차려서 믿음세워야겠다.
사단이 원수가 원수가 된게 여기서 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나를 버리셨구나.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시면 나를 이제 사랑하지 않으시는구나. 모든 것이 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다른이에게 드러나면 함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섬겨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게 아니라, 자기에게 은총주시지 않음에 원망하고 은총받은 이를 미워합니다. 섬김으로 나아갈줄 모르고 섬김받고자 합니다. 사단의 핵심적 속성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불신이고 인간들을 향해서는 미움이고 살인입니다. 그리고 불안하죠. 자신이 거짓인 것을 알기에 참이 드러날까봐, 그래서 열심히 거짓말을 합니다. 속입니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여러분 신앙이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정말 잠시입니다. 고난에 비할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는 고난은 고난이라고. 신앙은 힘든거라고 거짓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영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정말 흥취나고 신나는 삶입니다.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기도하는대로 다 이루어주시고 돈도 넘치도록 벌게 해주시고, 이제 이러한 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사단이 주님을 죽음의 공포앞까지 몰고갔습니다. 이 공포는 사단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여기서 많은 이들을 쓰러뜨릴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 믿음으로 그 공포를 이기시고 밟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던 삶. 빅터 크라이스트. 믿음은 반드시 이깁니다. 믿음의 삶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주님과 하나님은 깊은 사랑으로 하나된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사랑으로 하나된, 그 사랑으로 인한 이러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의 눈물을 흘리셨다면, 사단은 절규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제 끝났구나. 자기가 거짓인 것이 드러났구나. 부활이 그 증거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이 싸움입니다. 예수님이 진짜냐, 사단이 진짜냐. 둘중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서로 반대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아니, 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졌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다, 아니 그냥 좋은 사람이었다. 비우면 채워진다. 아니 비우면 가난해진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아니 믿음은 어리석은 것이다. 둘중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하나는 창조의 질서를 이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의 질서를 깨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을 따르겠습니까.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우리가 사단의 현란한 거짓말을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 믿음입니다.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믿음이 이깁니다.전적인 하나님을 향한 신뢰. 사람과의 관계도 그래요. 어떤 사람에 대하여 안좋은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때, 나라도 그에대한 믿음을 세워야지. 하나님이 이 마음을 보시고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지 않겠어요?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조건적으로 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 그 사랑의 확증, 확실한 증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이를 우리 입장에서 바꿔서 말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으시고 여전한 삶의 역경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