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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글쓴이 : 에베소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편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새해 첫 주일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사랑안에 늘 거하셔서 충만한 기쁨이 함께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첫 예배는 창조신앙에 대해서 묵상하길 원합니다. 창조주 앞에 선 나, 나 자신에 대한 묵상으로 한해를 시작하길 원합니다. 초대교부였던 터툴리안은 사람은 날 때부터 크리스천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다니든 안다니든 어떤 종교를 가졌더라도 이미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성어거스틴은 고백록이라는 유명한 책에서 핵심주제 한가지를 고백했다. 나는 하나님을 계속 찾았는데 왜 하나님을 계속 찾았을까요. 나를 찾고 싶어서에요.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하며, 내 안의 갈증은 어디서 해결될수 있을까.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는데, 하나님은 이미 내안에 계셨다. 신비로운 체험과 확실한 증거로 하나님을 찾으려 했다면, 이미 내안에 하나님과 뗄레야 뗄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나임을. 내안에 계신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죠. 하나님 안에서만 내 영혼이 안식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영혼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와 같이 불안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엄마 잃어버렸다고 불안하지 않지만, 오히려 엄마를 떠나야 되지만, 떠나고 싶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갈망은 하나님이 아니면 안되는 세계가 있어요. 내가 내 인생에 대한 갈증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나의 근원에 대한 갈망이에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어린시절의 풋풋한 감성적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어릴때는 잘 모를때는 하나님 믿고 지옥이 무서워서 죄에 대해서 두려워하기도 했는데, 알고보니 이제 철들어서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이제 성인이 되어 스스로 지혜가 생겨보니 이제 영혼의 불안은 사라진 것입니까.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죠. 영혼의 갈망에 대해 이야기하면 한가한 얘기한다고, 지금 할일이 얼마나 많고 즐길게 얼마나 많고 하고 싶은게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 그건 나중에 다 살고나서 생각해보겠다고.

1:22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사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갖고 살아가요. 이 해답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해답이 없는것 만큼 답답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해답을 찾아가요. 그래서 책도 보고 사람들에게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세상이들이 갖고 있는 인생의 해답이라는 것들이 내가 갖고 있는 해답이 내께 아니에요. 나로부터 나온 해답이 아니에요. 거의 주워 들은 것들이에요. 이렇다고 하더라. 책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마음에 터치가 오는 것들을 이리저리 모아서 해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그렇게 해서라도 내 영혼의 불안을 잠재우며 살아요.

제가 10대말, 20대초반에 인생이 뭘까에 대해서 깊이 빠져들어갈 때가 있었는데, 여러 많은 철학자들이나 유명한 이들의 책이나 말을 들으면서 내린 결론이 있었어요. 많은 좋은 말들과 화려한 해석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그들도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런게 아닐까 이거였어요. 내 소중한 인생을 이 사람들 말에 의지한다는게 이게 말이 안된다. 더 혼란스럽기만 했어요. 성경은 유일하게 답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우리 영혼의 물음에 대하여 큰 그림을 그려보면 결국 두마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나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나에요. 결국 이 두마음에서 내가 선택해서 가는 거에요.

우리 영혼은 하나님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갈망이 어떻게 우리 삶가운데 드러날까요.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줄분 없나요. 우리는요 이 사랑을 원하고 있어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수 있는 분,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 무섭고 더러운 나의 모습까지도 받아줄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내 마음 내 모습 다 보여줘도 나를 여전히 사랑해줄수 있는 그런 관계. 그런 사랑을 우리는 원하고 있는 겁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오해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가 어떠한 모습이라도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고해도 나를 여전히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해줄 그런 사랑. 우리는요 사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은거에요. 이것이 내 영혼이 이런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다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고 그 사랑이 가장 인생에서 갚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사랑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사랑을 했어. 뜨거움이 있었고 행복했고 전심을 다한 사랑이었어요. 그런데 점점 식어요. 상대방과 환경은 그대로인데 내안에서 식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져요. 그리고 상대방을 탓하기 시작해요. 너가 이런저런게 문제라고. 그리고 상대방을 바꾸면 이 마음이 해결될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름 더 나은 상대방을 찾아요. 그러나 어김없이 시간이 지나면 식어요. 그리고 결국 타협해요. 인생은 이런거지 하면서.

우리 영혼은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에는 없는 사랑이에요. 세상이 알수 없는 사랑이에요. 세상의 수준의 사랑이 아니에요. 이 사랑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비로소 사랑에 눈뜨게 됩니다. 비로서 사랑을 할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할수 있어요. 우리는 사실 사랑을 몰랐던 거에요.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고 이것이 정말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랑을 몰랐던 거에요.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이란 이런것이구나 머리가 아니라 내 영혼으로 내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 인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사랑은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영원한 사랑을 할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이걸 체험한 자가 천국에서 살수 있는거에요. 사랑이 지배하는 그곳에서 사랑으로 호흡하며 살수 있는거에요. 단순히 입술로 회개하고 가는 천국이 아니에요. 이 깊은 사랑에 눈뜬 자, 이 사랑에 흠뻑 젖어서 사는 자들.

13: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지금은 따라올수 없지만, 후에는 따라올수 있는 그 경계가 무엇일까요. 왜 지금은 따라갈수 없고, 후에는 따라갈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조건적이되고 율법적이고 해야할 의무만이 가득하고 고생만이 있고 비움만이 있는 신앙이 되면 따라갈수 없어요. 그러나 조건을 넘어선 하나님의 은혜가 내안에 넘치고, 해야할 의무를 넘어서서 사랑의 기쁨이 가득하고, 고생과 비움을 넘어서서 생명의 풍요로움이 가득한 신앙이 되면 따라갈수 있게 되요. 그 경계는 무엇으로 넘습니까. 우리가 할일은 단 한가지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되요. 그래서 우리를 찾으시는 거에요.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고 내 사랑만이 너를 충만케할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랑만이 우리를 가치롭게 할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생의 의미를 인생의 이유를 알게 해주시기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겁니다. 우리의 무언가를 달라고 오시는게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주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여는 것, 우리가 할일은 영원히 이것 뿐입니다. 주여 나에게 주의 사랑을 가르치소서. 주의 크고 비밀한 세계를 그 사랑의 세계를 내가 깨닫게 하소서. 나는 죄인이나이다.

어린아이에게 사랑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부모가 먼저 사랑을 줘여하지요. 사랑을 주면 사랑을 알게 됩니다. 사랑을 지식으로 가르칠수 없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아이에게 사랑이 들어갈수 없어요. 이것이 부모에게 가장 큰 고통일거에요.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해요. 많이 사함받은 자는 많이 사랑한다고. 진실되게 나의 문을 열면 그안에 아무리 더럽고 흉측한 것들이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더큰 사랑이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품어내실 사랑이 하나님께 있어요. 그 사랑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증거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영원토록 우리를 향한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까지 이 사랑안에 거할 때 우리 영혼은 만족합니다. 우리 영혼은 진정한 자유를 맛봅니다. 올 한해 주의 사랑을 온전히 알게 해달라고 주께 부르짓는 이 사랑안에 충만하게 거하는 그리하여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영혼의 불안한 마음이 평소에는 세상의 열심과 치열한 삶속에 가려져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삶의 긴장을 놓고, 내가 무엇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불안하다. 멈춰있으면 불안하고 남들 다 달리는데 뭐라도 해야하고, 살기위해 뭐라도 해야되요. 우리를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일로 나를 떠미는 세상이에요. 마음의 힘듦을 말하면 뭔가 약한 것 같고 지는 것 같고, 패배자가 된듯 하고. 남들 다 아무렇지 않게 사는거 같은데 나는 왜 이런 물음이 있는거지. 저의 고백을 말하는거에요. 세상은 이걸두고 약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약해지지 말고 강해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약한게 아니에요, 세상의 많은 위로의 말로 애써 힘을 내려합니다. 힘써서 만들어낸 나의 마음으로 영혼의 본성의 목소리를 덮어요. 그래야 살수 있는 세상이에요.

사실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면 이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어요. 중요하게 쫓았던 삶의 결과가 무너질 때, 삶의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영혼의 목소리에 이제 귀를 기울이죠. 어려움이 닥쳐서 약해져서 하나님을 찾는게 아니라, 원래 내재되어 있던 음성을 이제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감성적인 책들과 멘트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알아줄지는 몰라도, 알아는 줘요. 왜냐 그 책을 쓴 저자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인간이기때문에. 그러나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해결책이 없는 위로에요. 오직 나를 만드신 하나님안에 거할때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안에 거할 때 우리 영혼은 이제 비로소 자유해져요. 세상이 줄수 없는 자유에요. 죽기까지 나를 믿으시고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내 영혼에 들어올 때 우리 삶은 비로소 풍요로워집니다. 이 사랑안에 거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