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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글쓴이 : 에베소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15: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러분들 보십시오. 여기 누가복음15장에는 3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목자가 있고 여인이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에게 설명해주시는 비유입니다.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한 비유이지요.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누가복음15장은 3개의 비유로 하나님의 마음을 완벽하게 설명한 비유입니다.

첫번째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입니다. 두번째는 한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어떤 성경을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이것을 읽어보라고 하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어려운 것을 넘어서 좀 이상하다고. 여기 있는 목자도 좀 이상하고, 여인도 좀 이상하고. 99마리가 주는 기쁨보다 잃어버린 1마리 찾았을때가 더 기쁘다고하고, 1드라크마 잃어버려서 찾았는데 잔치를 벌이고 말이에요. 이상하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뭘까요.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할수 있어요. 여러분, 천국은 이렇게 괴상한 나라에요. 천국은 좀 상식에 안 맞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통치하는 세계안에는 상식에서 이해 못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첫 번째 비유는잃어버린 양의 비유입니다. 어떤 목자에게 양 100마리가 있었는데 1마리 양을 잃어버리면 99마리를 놔두고 1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99보다 1이 더 크다는 거에요. 이것이 천국의 계산법입니다. 어떻게 99마리보다 1마리가 더 클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이렇게 보면 이 비유가 풀려요. 그 한마리가 바로 라고 한다면. 이 비유는 하나님의 관점에 관하여 우리에게 설명해주시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냐는 말입니다. 모두가 쉽게 이해할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시는 장면이에요.

목자가 있는데, 이런 목자가 있다고 해봐요. 날이 저물어서 이제 양들을 불러모아서 집에 들이려고하는데 분명 100마리였는데 99마리밖에 없는거에요. 1마리 어디갔지. .. 이런 아쉽지만 어쩔수 없다. 포기하자. 나에게 그래도 99마리가 있지 않냐. 이런 목자 있을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목자가 아니시라는 거에요.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이런 목자이시라는 거에요.

양의 입장에서 한번 볼까요. 목자를 잃은 양이라는 것은 양의 입장에서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요. 목자가 99마리에 만족하는 목자였다면, 이 길 잃은 양은 끝인거에요. 혼자 아무리 애타고 울어도 목자가 오지 않는다면 이리들만 듣고 올 뿐입니다. 목자가 포기하는 순간 양은 죽음인 것입니다. 지금 양의 생명이 누구에게 달려있습니까. 양 스스로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목자에게 달려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자이신가. 찾아나서시는 분이라는 거에요. 99마리를 두고서라도 찾아나서는 목자시라는 겁니다. 찾아낼 때까지 찾으시는 목자. 감사하죠. 정말 다행이죠. 여러분 묵상하고 묵상할수록 이건 정말 감사한거에요.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매고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잃어버린 양을 찾고 목자가 너무 기쁜거죠. 동네 이웃을 다 불러서 기쁨을 나눠요. 함께 기뻐하자고. 그런데 사실 양이 더 기쁜거 아닙니까. 양이 살았잖아요. 여러분 천국은 이런 곳입니다. 나보다 목자인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곳, 그리고 혼자서 꿍하니 기뻐하는게 아니라 다 불러내서 기뻐하고 함께 기뻐하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기쁨이 충만한 곳이 천국입니다. 목자가 나를 포기하지 않아서 내가 산 것인데, 나보다 더 기뻐해요. 여러분 내가 기쁜데, 나보다 더 기뻐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내가 슬픈데 나보다 더 슬퍼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고 이론이 아닙니다. 요일1장의 사귐이라고 표현되어 있듯이, 사귐의 관계인 것이고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항상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부르짖었던게 아니에요. 구원은 내가 부르짖어서 내가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에요.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신 겁니다. 항상 늘 먼저 다가오셨던 거에요. 이 세계가 보이면 이제 신앙이 성숙해집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잃어버린 양에게 있어요. 이 잃어버린 양이 누구인가. 그리고 99마리의 양은 누구인가. 7절에 나와요.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잃어버린 양은 죄인이에요. 아흔아홉마리의 양은 의인이에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무엇인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기쁨이 어때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명보다 더 기쁘다고. 여러분 이해되세요? 당연히 의인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신앙이라는 것이 의인이 되고자 하는 것 아니냐고요.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위한 것 아닙니까. 신앙의 규례들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노력들, 회개할 것이 더 이상 없는 의인이 되기 위한 그리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자 하는 길이 신앙의 길이잖아요. 그런데 의인99명이 주는 기쁨보다 죄인 한명이 회개했을때의 기쁨이 더 크다고 하십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이죠?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우리가 조금더 확장해서 이 비유를 봅시다. 이 비유를 듣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가.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지금 두 부류가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죄인인 자들과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고 있어요.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하셨기때문이죠. 지금 이 두 부류의 대상이 있고 이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하십니다. 지금 이 비유는 매우 중요하고 심오한 비유입니다. 두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죄인과 의인에게 둘다 깊은 가르침을 주고 계신거에요.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정적인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시는 놀라운 비유입니다.

잃어버린 양은 누구입니까. 죄인입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감히 더 이상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바로 나죠. 잃어버린 양이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가 곤궁에 처할 때 우리가 잃어버린 양이 되었을 때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 우리를 찾으신 하나님. 나를 찾았던 분이 있었다니. 나보다 훌륭한 수많은 의인들이 주는 기쁨이 있을텐데, 보잘 것 없는 이 한마리 잃어버린 양에 대해서 관심가지시는 하나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던 세리들과 죄인들은 자신들을 찾으시는 수고로운 하나님의 마음, 이 마음은 사랑이죠. 이 사랑에 마음이 촉촉해졌을 것입니다.

지난주에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봤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말할수 없는 희생의 감정, 사랑의 감정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수 있다고 했어요. 내 자식이라고, 날 닮은 내 자식이라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렇게 우리를 만드시고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가 어찌 담담할수 있습니까. 어찌 계산적이 될수 있냐고요. 그래도 다른 자식들 많으니 하나쯤은.. 이런 부모가 어디있냐고요. 창조는 그런 것입니다. 그냥 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99마리보다 1마리가 더 중요하다는 거에요.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99명의 의인이 주는 기쁨보다 1명의 죄인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거에요. 그 죄인이 회개하면.

지금 이 세계는 비교우위의 세계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누가 더 좋고 더 나쁘고 이런 세계를 말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심정의 세계를 말하고 싶으신 거에요. 죄인이 회개해요. 그럼 당연히 기쁜거죠. 그런데 그 기쁨이 의인 99명이 주는 것보다 더 기쁘다고. 다시 말하면 말할수 없는 죄인인데, 회개를 했어요. 그를 의인 99명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세우는 것과 같아요. 저 위에 앉으라고. 다 보라고. 제일 높은 자리에 앉혀요. 잔치의 제일 상석에 앉혀요. 그래 너 이제 의인됐으니까 저기 100번째 앉으라고. 이게 아니고 제일 위에 앉혀요. 포도원의 품꾼 비유에서 맨 나중에 와서 가장 조금 일한 자에게 가장 먼저 앞에 세워서 품삯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게요 천국이에요. 더 놀라운 것은 뭔지 압니까. 99명의 의인들이 더 기뻐해. 자기보다 상석에 앉았는데 더 기뻐해요. 자기가 뒤로 밀렸는데 더 기뻐해요. , 하나님과 한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세계, 이런 심정의 세계를 깨달아야 천국의 주인으로 살수 있습니다. 이런 세계를 모르면 다 기뻐하는데 혼자 입 삐죽나와서 괴로워하게 되요. 천국은 이상한 곳이야라고 하면서 지옥으로 걸어가게되요. 바리새인들은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믿는다는 자들인데 비웃었습니다. 말도 안된다는 거죠. 자기의 구원과 자기가 받을 상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회중에 들었으면 됐지, 잃어버린 양에게 무슨 관심을 가지냐는 거에요.

이 비유의 핵심은 이 구절에 있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누가복음15장에 있는 3개의 비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 다 잃었던 거에요.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기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잃은 것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내가 내 죄를 회개하면, 죄인이 회개하면 이것은 잃은 것을 찾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죠. 탕자의 비유에서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나를 알고, 내 죄를 깨달아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안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앞에 앉아있었던 버리새인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어떤게 기쁨이 되는게 아니에요. 진정으로 회개하면. 예수님 회개를 이렇게 표현하세요.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이거에요. 회개라는게 죽은 아들이 살아난 기쁨이에요.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이라는 거에요. 내가 회개하기까지 나를 찾아오시고 나를 깨닫게 하시고 나를 가르치시고 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리면 이보다 더큰 고통이 없다고 하죠. 부모는 잠을 잘수도 밥을 먹을수도 없는 지경이 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수십년간 잃어버렸던 아들이 살아돌아온 기쁨. 말할수 없는 기쁨이죠.

드라크마의 비유는 무엇입니까.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던 것을 찾았어요. 잃어버린 것을 찾으면 반드시 기뻐요. 그리고 잔치를 해요, 축제가 열리는 거에요. 그런데 한 드라크마보다 잔치가 더 돈이 많이 들어요. 이렇듯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실리적이고 계산적이지 않다는 거에요. 조금의 실용적인 마음이 이만큼도 없는 사랑이라는 거에요. 아들이 살아 돌아온것보다 더큰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이 어떻게 의인 아흔아홉이 주는 기쁨보다 클수 있을까. 이건 관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어요. 의인 아흔아홉이 주는 큰 기쁨이 있지만, 그 자체로 존귀한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기쁨이 있는 것이지만, 잃어버린 아들이 있으니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님이시고 그곳에 늘 눈이 가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거죠. 진정한 사랑은 그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만족하는 것을 기뻐해달라고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이렇게 되요. 그가 관심갖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가 웃으면 내가 웃고, 그가 울면 내가 울게 됩니다. 사랑은 이렇게 호흡해요, 이 사랑이 생명이 됩니다.

타락이라는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떠난 사건이 타락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묵상할 때 굉장히 중요한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랑을 구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제발 사랑해달라고 버림받은 여인처럼 매달리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을 하시는게 아닙니다. 사랑에 있어서요, 하나님은 결코 양보하지 않으시는 세계가 있어요. 여러분 이거 정말 잘 깨달아야되요. 아담이 죄를 짓고 숨었는데,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이렇게 부르세요. ‘아담아 너 나오면 내가 용서해줄께. 그러니 안심하고 나와이렇게 말안하십니다. 아담의 죄를 다 아시고 아담앞에까지 찾아가셨지만, 아담 스스로 나오게 하신다는 거에요. 가인과 아벨이 있는데 가인의 귀에 대고 너의 제사 안받은건 사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야이렇게 다 설명안하세요. 다 이해되고 다 납득되고 다 깨달아서 가는 길이 신앙의 길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해되지 않을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려하는 자들은 결코 진정한 하나님을 만날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강압으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니고, 협박으로 혹은 구걸해서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잖아요. 그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믿음을 세워서 세워야되요. 스스로 세우게하세요. 세울 기회를 주세요. 하나님의 사랑은 질퍽거리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믿음은 이성에 갇힌 믿음,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논리적으로 타당하면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에, 이런 수준에 결코 타협하지 않고 결코 양보하지 않으시는 세계가 있어요. 제발 회개해줘. 절대 이렇게 말안하십니다. 왜냐. 진짜 사랑하니까 그러시는 거에요. 영원히 우린 그 사랑을 해야하니까. 감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히 침범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세계가 있어요. 내가 스스로 하게 하시는 세계, 믿음을 세우시게 하는 세계. 이 세계를 알면 깜짝 놀랍니다. 눈이 번쩍 떠져요. 아 이게 단순한 사랑이 아니구나. 정말 놀라운 사랑이구나. 살아있는 실제적인 사랑이구나.

우리가 회개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노력과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가 회개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 너가 한거야. 너가 믿음을 세운것이고, 너가 돌이킨거야. 나에게 모든 공을 돌리시고 나보다 더 기뻐하시고 잔치를 벌이시는 하나님. 이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의인은 이러한 하나님과 한마음으로 사는 자들이죠. 천국은 이런 곳입니다.